몇 년 전부터 다시 꽃을 피운 골프산업의 요즘을 단박에 설명하는 단어다. 골프산업은 한때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다. 골프장 숫자는 크게 늘어나는데 젊은 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골프를 외면했다. 한때 천정부지로 뛰던 골프장 회원권은 반 토막을 넘어 3분의 1 가격으로 급락했다.
한물간 미운 오리서 단숨에 백조로
코로나 안전지대 인식에 필드 ‘고고’
매주 2~3차례 골프를 즐기는 김현철 씨(46)는 지난 6월 초 P골프장 그린피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해만 해도 평일 12만원이었던 퍼블릭(대중제) P골프장 그린피가 19만원대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딱히 명문 구장도 아닌데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뿐 아니었다. 지난해 10만~13만원대였던 평일 야간 그린피가 올해는 16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는 “골프 동아리 멤버와 날짜를 확정했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망설여졌다”면서도 “다른 골프장 그린피도 크게 올랐고 괜히 부킹(예약)을 못할까 싶어 비싼 값을 치르고 운동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증권사 영업팀장 윤상현 씨(45)는 매주 하루씩 B골프장 앱을 켜고 포인트 쌓기에 나선다. 이 골프장은 50포인트를 쌓아야 한 번 부킹을 해준다. 거의 1년 동안 매주 빠짐없이 포인트를 쌓아야 딱 1번 골프장에서 운동할 수 있는 자리를 얻는 셈이다. 그는 “골프 친구 4명이 이런 식으로 포인트를 쌓아 분기에 1번 라운딩을 나간다”며 “올해 특히 더 골프장 부킹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실내 테니스를 즐기던 사업가 김세용 씨(42)는 최근 골프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다니던 체육관이 문을 닫았다. 안전한 스포츠를 찾다 친구 권유로 골프 클럽을 들었다. 김 씨는 “스크린골프를 쳐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며 “어느 정도 연습을 마치면 필드에도 나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내 골프산업이 초호황기를 맞았다. 골퍼들이 쏟아지며 골프장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끝 모르게 추락하던 회원권 가격은 상승세로 돌아섰고 골프장 M&A(인수합병)도 활기차게 돌아간다. 특히 올해 코로나19로 실내 스포츠가 움츠러들자 골프가 최대 수혜를 누리는 모습이다. 일부 골프장 웹사이트는 부킹 수요가 몰려 다운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악재가 아닌 코로나19 수혜를 입은 것이다.
▶금융위기 뒤 직격탄 맞았지만
▷퍼블릭 늘어나며 마케팅 성공
국내 골프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은 보유하던 골프장 회원권을 팔기에 바빴고, 회원권 가격은 급락했다. 회원제 골프장이 어려워지자 5년 거치 후 회원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입회 반환금을 돌려주지 못해 줄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심지어 회원들에게 골프장 소유권을 넘겨주는 사례도 일어났다. 비용은 비싼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젊은 층이 골프를 꺼려 했다. 어느 면으로 보나 골프는 사양산업처럼 여겨졌다.
반등 계기를 잡은 건 2015년이다. 회원제(멤버십) 골프장이 줄어드는 대신 대중제 골프장이 늘어났고, 퍼블릭 골프장은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섰다. 평일 라운딩 그린피를 대폭 깎고 차별화한 서비스를 앞세워 젊은 층을 불러 모았다. 마침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며 여가시간이 늘어났다. 평일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문화가 골프장 대중화에 기여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의외의 변수가 골프산업을 키웠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한일 갈등으로 일본 관광이 크게 줄어들자 국내 골프장이 반사이익을 얻었다. 마침 최근 몇 년 새 겨울이 따뜻하고 8월 폭염 일수가 줄어들자 골프장을 찾는 내방객이 늘었다.
이른바 ‘김영란법’ 우려도 기우에 불과했다. 2016년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발효됐지만 골프장 타격은 크지 않았다. 접대골프 수요는 감소했지만 순수하게 운동을 즐기는 골퍼들이 이 자리를 메웠다. 회원제 골프장은 대중제로 전환하며 이 같은 변화에 대응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 22% 훌쩍
▷부킹 대란에 골프장 ‘만면 미소’
특히 올해는 최근 몇 년간 상승세의 초절정기라고 부를 만하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많은 산업이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골프장만큼은 예외였다. 체육관 등 실내 스포츠가 ‘멈춤’ 모드로 돌아선 가운데 ‘골프가 안전한 즐길 거리’라는 인식이 산업을 키웠다. 사람 간 신체 접촉이 없고 친목 도모와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막히며 일본, 태국, 베트남 등으로 원정 골프를 즐기던 동호인이 국내 골프장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수요 증가 원인 중 하나다.
유동균 언더파골프 대표는 “골프가 과거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였다면 요즘 젊은 층은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운동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커뮤니티’로 이해한다”고 전했다.
최근 실적은 상승세를 탄 골프산업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2019년 골프장 경영실적 분석’을 보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260개 골프장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2.5%에 달했다. 지난 2009년 영업익 24.1%를 찍은 뒤 계속 10%대에 머물렀으나 11년 만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5%대에 머무는 일반 기업체 영업이익의 네 배에 달하는 호실적이다. 특히 166개 퍼블릭 골프장 영업이익률은 33.2%로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94개 회원제 골프장 영업이익률 역시 7.3%로 전년도보다 5.4%포인트 상승하며 2011년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분위기도 좋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올해 골프장 내장객이 4월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10%(홀당) 정도 늘었다. 또한 골프 예약 서비스 업체인 XGOLF(엑스골프)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올 3월과 4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예약률이 각각 112%, 117%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5월 숫자가 눈에 띈다. 지난해 XGOLF 5월 총 예약자는 3만3824명이었는데, 올해 5월 17일 이미 3만3101명으로 지난해 수준에 달했다. 5월 전체 예약자가 6만명에 육박하며 2배 가까이 치솟았다. 골프 수요가 몰리자 그린피는 크게 올랐고, 팔리지 않아 헐값에 나오던 덤핑 티타임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캐디피나 카트피도 슬그머니 인상됐다.
미국 상황도 비슷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출입금지령에 감금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셧다운이 풀리자 골프장으로 몰려갔다”고 보도했다. 대체로 지난해 대비 30% 라운드 수가 늘었다는 분석도 내놨다. 2002년 3000만명이던 미국 골프 인구가 2019년 2430만명으로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반전으로 평가된다.
▶기업·사모펀드 앞다퉈 ‘사자’
▷나왔던 매물도 도로 거둬들여
골프장 몸값도 치솟았다. 업계에 따르면 골프장 가격은 18홀 기준 1400억원대, 27홀 기준 1800억원대에 달한다. 일명 ‘회원권 대란’이 일었던 2000년대 후반 18홀 골프장이 700억~900억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깝다. 지금은 매물조차 희귀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최근 두산중공업이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클럽모우CC(27홀)는 1800억원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1600억~1700억원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아덴힐CC는 1400억원, 충남 금산에 자리한 에딘버러CC도 1400억원으로 전해진다.
사모펀드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수익에 민감한 사모펀드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만큼 골프장 영업이익이 안정적이라는 방증으로 보인다. 지난 1월 골프존카운티가 아트밸리컨트리클럽, 스트라이커캐피탈이 파가니카CC를 인수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장 매매 거래금액은 1조218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2018년(7674억원)에 비해 약 33.2% 증가했다. 2015년(1625억원)보다는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명순영·김경민·박수호·류지민·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4호 (2020.06.24~06.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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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5, 2020 at 08:1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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