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했지만 스트레스로 한쪽 눈의 시력과 열정 잃어
최근 모 클럽 브랜드는 광고에서 웨지의 그루브 수가 2개 더 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루브(groove)는 아이언이나 웨지의 페이스에 가로 방향으로 새겨진 홈을 말한다. 클럽 페이스와 골프공이 접촉하는 시간은 2500분의 1초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그루브는 물이나 이물질 등의 영향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타이어의 홈과 같은 원리다.
골프 룰에 규정된 그루브의 최대 폭은 0.9mm(0.035인치)다. 1mm도 채 안 되는 이 너비를 두고 법정 소송까지 가서 결국 이겼지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천재’가 있다. 은백색의 염소수염 때문에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로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던 칼스텐 솔하임(1911~2000년)의 이야기다.
솔하임이 트레이드마크인 염소수염을 기른 건 1971년 세계 여행 도중 인도에서 자동차 사고를 겪고나서다. 당시 턱의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받았는데 아내가 이 기회에 턱수염을 길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서다.
솔하임은 1970년부터 아이언 생산에 정밀 주조법을 도입했다. 제조 방법이 바뀌면서 그루브의 모양도 조금 바뀌게 됐다. 단조 방식에서는 프레스를 이용해 그루브를 찍었다. 홈의 모양이 알파벳 V자 형태였다. 하지만 주조 방식에서는 그루브 형태가 뭉툭한 U자 형태가 됐다. 정밀 주조법이 확산되자 미국골프협회(USGA)도 1984년 룰을 개정해 U자 그루브를 허용했다.
룰이 개정되자 솔하임은 이듬해인 1985년 특수 제작된 주형을 사용해 좀 더 정교한 U자형 그루브를 가진 핑 아이2(EYE 2) 아이언을 내놨다. U자형 그루브는 페이스 표면이 마모가 되더라도 홈의 너비가 거의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래 사용하더라도 처음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루브 끝이 날카로워 골프공에 작은 흠집이 쉽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솔하임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루브 모서리를 약간 둥글게 했다. 문제점이 해결되고, 핑 아이2 아이언은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하임은 USGA의 이런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에 USGA가 그루브 너비를 측정할 때는 항상 클럽 페이스의 수평선과 그루브 벽이 이루는 수직선이 만나는 점을 기준으로 측정했기 때문이다. 즉, 모서리의 곡면과 관계없이 그루브 벽 사이의 간격이 너비였던 것이다. 이 방식대로 하면 핑 아이2 아이언은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USGA는 그루브 너비를 측정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30도 측정법’을 도입했다. 페이스 면과 30도를 이루는 곡면의 점과 점 사이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이 측정법을 사용하면 핑 아이2 아이언은 규정에서 벗어나게 됐다. USGA는 새로운 ‘30도 측정’ 규정을 따르라고 했지만 핑 측은 거부했다.
USGA도 물러서지 않았다. US오픈을 포함해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핑 아이2 아이언의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핑 측은 "30도 규정을 정확하게 측정할 도구조차 없지 않느냐"며 맞서는 등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핑은 1989년 USGA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핑은 USGA에 제기한 소송에서 이겼고, 1993년에는 PGA 투어와의 소송에서도 법원은 핑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지루한 법적 소송은 천재 클럽 제작자에게도 큰 타격을 입혔다. 솔하임이 나중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는데 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시신경이 망가진 게 원인이었다.
하지만 논란이 가중되자 솔하임의 아들이자 현재 핑 골프의 회장인 존 솔하임은 그해 3월 페어플레이를 위해 핑 아이2 아이언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첫 소송이 시작된 후 21년 만의 일이었다.
김세영 기자 sygolf@chosunbiz.com
#골프&테크 #핑 # 그루브 #아이언 #웨지 #솔하임
November 21,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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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테크] '염소수염' 할아버지의 0.9mm 그루브 싸움 - IT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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